1990년대 이후, 전 세계는 지구온난화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공동의 목표를 수립했고,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모습과 행동으로 그에 대한 해법 방안을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대의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중요성의 비중은 일부 달라지곤 하지만, 인류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임을 알기에 큰 틀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도 기후변화대응이라는 세계적인 패러다임에 맞춰 구체화 된 목표와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고, 분야도 산업분야, 발전분야, 수송분야, 건설분야로 세분화하여 온실가스 배출저감 의지를 현실화하는 작업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건설분야에 구체화된 저감계획 내용으로는 에너지부하 저감 기술, 건축설비 효율개선, 그린홈 및 신재생에너지 등 장려, 유지관리 방안 개선 및 보급 등 입니다.
사실, 온실가스 배출저감과 관련한 국내 정부의 노력은 새로운 정책 방향이 아니며, ‘에너지이용합리화법(1979년)’ 이후 이미 약 4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녹색건축인증제도(구.친환경건축물인증제도 2002년)’도 마련하여 친환경건축물 보급을 위한 틀을 마련하였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2010년)’,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2012년)’도 제정하여 산업계의 적극적 활동을 재촉한 바 있습니다.
이후, 국가 차원의 ‘녹색건축물 기본계획(2014)’이 수립되었고, 서울, 부산 등 각 지자체에서는 ‘녹색건축물 조성계획’을 마련하여 지자체의 녹색건축물 이해도와 인식을 크게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녹색건축물 설계기준’까지 제정되어 활발하게 운영하는 등 이제 녹색건축물은 우리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한 해 서울시에 준공되는 건축물 중 절반 가까이가 녹색건축인증 건축물이라는 통계가 그것을 대변합니다.
이러한 국내 정부의 강한 의지와 정책이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산업계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왔던 친환경건축 컨설팅 분야에 전문기업이 하나둘씩 설립되기 시작했고, 전문 산업분야로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인데,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동안 친환경건축 컨설팅사는 수많은 친환경건축 전문가를 양성했고, 친환경건축 디자인 및 기술발전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으며, 무엇보다 정부가 녹색건축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최일선에서 선봉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친환경계획그룹 청연(대표 김학건)은 2006년에 설립된 1세대 친환경건축 컨설팅 전문기업입니다. 친환경건축 디자인 및 기술컨설팅 기업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친환경건축 연구, 기술개발, 인증 등 친환경건축과 관련한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친환경건축 컨설팅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서울에 본사, 부산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약 100여명의 친환경건축 전문 컨설턴트가 전국 각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약 5,000여 건의 크고 작은 다양한 건축물에서 친환경 컨설팅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 친환경건축의 성장 그래프는 우상향하고 있는가
정부의 녹색정책 영향하에 인증 의무화 등 친환경건축 산업시장은 규모면에서 상당한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산업 최전선에서 실무를 진행하는 친환경건축 컨설턴트라는 직업군도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됐으며, 건축설계를 위한 협력사 구성시 친환경사와의 협업도 당연시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친환경건축 시장이 양적 성장 만치, 질적 성장도 이뤘냐라고 묻는다면, 긍정적 답변을 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10여년 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나오곤 합니다. 가령, 건축설계를 위한 협력사 미팅시 친환경 분야의 중요성과 위상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는 느낌이 들며, 참여기간 동안 친환경사에 대한 업무적 압박(?)도 과거에 비해 다소 약해졌음을 친환경 컨설팅 실무자들은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탄소제로, 녹색건축인증,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 등 정부 정책 및 인증기준은 점점 더 강화되고, 의무범위는 확대되고 있는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제도 및 정책 수립은 친환경의 가이드 역할 정도일 뿐이고, 실질적 친환경 건축의 수준은 집행진의 진행 및 운영 의지에서 결정된다고 봅니다. 특히 현장에서 심사, 심의, 평가 등이 대단히 중요할텐데, 현재 그 부분이 가장 아쉽게 느껴집니다.
약 십수년 전, 서울, 경기지역에 집중되어 있던 공공청사를 지역의 경제발전을 위해 전국 각 지방에 분산 배치하는 사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된 바 있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신사옥, 한국수력원자력신청사, 한국교육개발원신청사 등이 그것입니다. 그 당시 사업의 화두는 단연, 초에너지절약형 친환경 사옥이었고, 그 짧은 기간 동안 친환경 기술개발과 연구는 상당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당선작 선정을 위한 심사에서도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정량적 평가는 대단히 수준 높게 진행된 바 있습니다. 국내의 대표적인 친환경건축물 사례를 추천한다면 아직까지도 그 시기의 건축물을 소개하곤 할 정도로 수준 높게 설계되고 시공되었습니다.
반면, 지난 수년간 연초마다 계속해서 상당히 많은 사업이 발주되고 있는 '그린스마트스쿨'이라는 사업이 있습니다. 타이틀마저도 그린스마트이고, 평가위원에는 건축환경분야 교수진도 꼭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린스마트 부문에 대한 평가위원의 평가는 변별력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하물며 사업 발주처에서도 변별력 평가를 위한 구체적 도서 및 자료의 제출도 전혀 요청하지 않습니다. 에너지 절감 및 분석자료, 건축환경분석 및 개선자료, 스마트기술에 대한 제안자료 등은 제출 요구도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린스마트스쿨 사업 초창기 시절에는 사업 제안자 측에서 그린스마트스쿨 이라는 타이틀에 무게감을 두고 친환경사와의 협업과 참여에 상당히 비중을 두었었습니다. 하지만, 수년의 경험을 통해 발주처의 의지가 크지 않음을 확인한 현재는, 친환경사와의 협력을 구색만 갖추는 상황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늬만 그린스마트스쿨인 것입니다. 따라서 준공 건축물의 수준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겠습니다.
현상설계나 기술제안입찰 등 공모사업도 다를 바 없습니다. 2010년대 초중반의 공모지침에서 친환경분야의 배점은 상당히 높았고, 그에 맞춰 친환경계획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세부적으로 심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연히 그에 맞춰 진행된 친환경계획 및 기술 수준은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배점은 낮아지고, 공모지침서의 친환경 요구사항도 점점 더 색깔이 옅어졌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준공된 건축물에서의 친환경성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아래 사례는 2013년과 2024년에 진행된 기술제안입찰의 평가항목 및 배점기준 사례입니다, 2013년에 진행된 기술제안입찰에서의 친환경분야 배점은 45점/100점이었던 반면, 2024년에 진행된 기술제안입찰에서의 친환경분야 배점은 7점/100점으로 대단히 낮아졌으며, 정부의 탄소제로‧탄소중립 정책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시행되고, 평가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물며 친환경분야는 전문분야에서도 사라졌습니다.
■ 공모기획자, 공모평가자, 공모심사자, 사업시행자의 역할론 재고
기후변화대응에 대처하는 국내 정부의 정책과 제도 마련 및 시대적 대응은 타 선진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하다거나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친환경 건축의 수준이 10여년전 보다 오히려 퇴보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어디에 문제가 있고 어디서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친환경 정책과 제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설계자와 시공자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고, 결과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축계 분위기입니다. 물론, 설계자와 시공자의 역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친환경건축물을 구현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수준 높은 건축물로 구현하고자 하는 일반 프로세스와는 각 참여자의 역할과 비중에서 다소 차이가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친환경건축물 구현을 위한 기획 단계부터 준공까지의 전체 프로세스를 현장에서 세밀하게 지켜본다면 어디 시점, 어느 관계자에 의해 결정적 전환 포인트가 되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피부로 절실하게 느끼는 중요 전환 시기가 있고, 그 시기의 역할자는 공모기획자, 공모평가자, 공모심사자, 사업시행자이며, 그들의 사고와 역할에 따라 친환경 수준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이 친환경적 사고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면, 역시나 수준 높은 결과물은 도출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해당 관계자분들은 해당 사업에 참여하거나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 책임감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이고 적잖이 부담감마저 느껴며 업무를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단계가 잘 정착된 후 우리가 바라는 친환경건축의 수준이 부지불식간 한뼘 더 성장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친환경건축의 대중화는 여전히 남겨진 숙제다
친환경건축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의 정책 및 제도가 잘 마련되고, 공모기획자, 공모평가자, 공모심사자, 사업시행자, 설계사, 시공사 등이 열정을 가지고 사업에 임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겠습니다. 하지만 범국가적 친환경 문화로 조성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야 하고, 이를 통한 대중화가 이뤄질 때, 탄소중립, 탄소제로의 시대가 펼쳐질 것입니다. 세계인의 눈은 점점 더 기후변화 대응에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디테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정부 뿐 아니라 단체, 기관, 회사, 모임 등 다양한 곳에서 친환경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친환경계획그룹 청연은 친환경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으로 2014년부터 5년 주기로 도서 출간 등 이벤트를 진행하는 중장기적 목표를 수립한 바 있습니다. 2014년도에는 국내 최초의 친환경건축 실무도서인 '친환경건축 실무를 엿보다'(구미서관)라는 도서를 출간해 대학생 및 관계자에게 입문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바 있고, 2019년도에는 ‘제로에너지 그린리모델링’(주택문화사)이라는 설계 및 시공 실무도서를 출간해,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시행하고자 하는 관계자에게 큰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두 권의 도서가 국내 친환경건축 도서로서 평단의 좋은 호평을 받았고,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도서 출간을 통해 친환경건축의 저변화를 꾀하려는 목표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바 있습니다. 이후 오랜 논의를 거쳐 2024년도에는 도서가 아닌 대중 공개 영상 제작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로 했고, ‘청연제작소’(Youtube)라는 타이틀의 친환경건축 영상 채널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친환경건축을 소개하고,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영상을 정기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친환경건축의 대중화를 유도하고자 합니다. 지난 7월부터 국내의 친환경건축물, 친환경건축 기술소개, 친환경건축 이슈 사항 등을 제작해 영상을 송출하고 있고, 추후 시청자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수렴해 제작 방향에 적극 반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대응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친환경건축이 삶의 수준 향상이라는 옵션 분야가 아닌, 생존의 분야로 다가온 만치, 이젠 일반 대중의 관심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고, 각 분야 관계자들은 각 자리에서 해당 역할 수행에 좀 더 열정과 주의를 기울여 친환경건축물이 준공되는 순간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